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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의 일을 "많은 일이 있었다"라고 줄여버리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래도 요약해 본다면, "내가 수집해 온 구제 옷들이 이 공간을 거쳐서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라고 회상할 수 있다. 물건들은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갔고 남은 건 그들과의 기억이다.

작년 9월의 일이다. 가게를 오랜 시간 둘러보던 손님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직원을 뽑으실 생각이 있느냐, 있다면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한테는 놀라운 일이었다. 마침 어떻게 하면 좋은 분을 모셔올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지난 "아침 프로비전 플리마켓" 때 우리 부스를 찾아준 손님이었고, 오사카의 어반리서치에서 7년간 일한 프로였고, 한국에서 1년간 체류할 예정인 일본 분이었다.

영업 일수 50일 차 사장 앞에 나타난 일본 대형 편집숍 1,800일 근무 경력자라니. 지금도 종종 이야기하지만, 갑자기 가게에 혜성이 충돌한 것 같은 사건이었다. 업력이 일천한 가게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분을 모셔 올 수 있을지, 첫 장부터 막막했는데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해결책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아코씨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우리 가게 첫 스태프, 아코!

2024.11 엉클조 소시지 회식.

 

아코씨가 가게를 돌봐주기 시작한 뒤로 우리가 열심히 쌓아 놓은 티셔츠들은 계단처럼 몇 cm씩의 간격이 생겼다. 쌓여 있는 티셔츠를 위에서 바라볼 때 티셔츠들이 골고루 보이게끔 배려한 것이다. 그 밖에도 인스타그램에 제품을 포스트 한다든지, 피팅 사진을 올린다든지, 온라인에 제품 게시를 시작한다든지, 디스플레이를 수시로 바꾼다든지... fwd에는 세심한 변화들이 쌓여나갔고 지금은 많은 부분이 과거와 다르다. 지금의 fwd는 시작한 사람보다도 아코씨의 손때가 더 많이 묻어있다. 

지금껏 fwd는 관계 맺음을 지양해 왔다. 손님들과의 관계나 커뮤니티에 집중하는 멋진 가게들을 동경하면서도, 우리 가게는 손님들이 물건에 집중하고 각자의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남는 것은 인연이고 관계라고 회상한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fwd가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선물은 이로 말미암은 인연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인연, 아코! 그동안 감사했어요. 드넓은 지구별에서 우리를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2025.06

 

아코씨는 얼마 전 오사카로 돌아갔습니다. 아코씨가 fwd에 남긴 것만큼이나 지난 9개월이 아코씨에게도 유의미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아코씨가 계시는 동안 fwd를 찾아준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우리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코씨의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해 주세요.

fwd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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